[르포]달동네 지켜주는 3.65㎏ 까만 효자…올겨울 버틸 온기 1.8만 시간
2023. 11. 27. / 뉴스1 / 장성희기자
■ 자원봉사자들 백사마을 최고 효자 '연탄' 3천장 배달완료
■ 하루 8장으로 난방부터 음식조리까지 해결…보일러론 '대체불가'

| 지난 23일 봉사자들이 연탄을 짊어진 채 대기하고 있다.2023.11.23/뉴스1 ©News1 장성희 기자 |
지난 23일 오전 10시. 적막감이 감도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에 경쾌한 발걸음 소리와 떠들썩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날은 50여 명의 봉사자들이 3000개의 연탄을 백사마을의 9가구 주민들에게 배달하는 날이었다. 무용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현장 체험학습을 제출하고 온 초등학생도, 황금 같은 공강 시간을 쪼개서 온 대학생도 개당 3.65㎏인 연탄을 6~10개씩 지게로 짊어지고 경사진 골목길을 오르내렸다.
열이 나는지 어느덧 봉사자들의 볼이 빨개지고 머리칼이 땀에 젖었다. 겉옷은 한참 전에 벗어두었다. 이미 손이 연탄재로 까매진 초등학교 6학년 양성훈군은 "실제로 들어보니 (연탄이) 무거웠다"면서도 "조금만 고생하면 어르신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으니 뿌듯하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휑하던 창고는 어느덧 깔끔하게 정렬된 6층 연탄 아파트가 들어섰다. 백사마을 주민들의 입가에도 안도 섞인 미소가 그려졌다. 봉사자들에게 거듭 고맙다고 하던 이금자 할머니(80)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졌다.
◇ "없는 사람들이 연탄 때문에 산다"

| 봉사자들이 다녀간 후 쌓여있는 연탄.2023.11.23/뉴스1 ©News1 장성희 기자 |
"연탄이 우리에게는 아주 큰 효자죠."
버스도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던 60년 전, 이 할머니는 백사마을로 시집을 왔다. 그때도 할머니는 연탄으로 불을 지폈다. 시집살이하던 그때는 연탄 3~4개를 줄로 꼬아 들고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다고 한다. 집에 들어서니 성인 허리춤까지 오는 항아리 색깔의 연탄난로가 보였다. 한 번에 들어가는 양은 2개. 6시간마다 3번을 교체하니 하루에 총 8개를 사용하는 셈이다. 그 8개로 할머니는 하루를 살고 있다. 빨갛게 달아오른 연탄을 품은 난로의 온기 덕에 15평 남짓한 집안 공기는 훈훈했다. 바닥 역시 미지근하게 데워져 맨발로 돌아다녀도 시리지 않을 온도가 됐다. 이 할머니는 "연탄을 주니 이렇게 따뜻하게 사는 거지"라고 했다. 이 할머니의 건너편 주택에 살고 있는 안금옥 할머니(80)는 아예 연탄 3개가 들어가는 난로 옆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한다. 할머니는 "방마다 난로를 뗄 수는 없으니 거실 난로에 연탄을 때고 소파에서 잔다"며 소파 위에 깔린 이불을 보여주었다. 여러 차례 누워 이불 속 솜이 뭉개졌는지 요는 납작해져 있었다.
연탄은 집안의 난방만 책임지지 않는다. 음식 조리도, 세수나 설거지를 위해 물을 데울 때도 주민들은 연탄난로를 사용한다. 이날 방문한 가정집의 연탄난로 옆에는 알루미늄 포일 위에 올려진 고구마 껍질, 물이 담긴 주전자, 찌개가 담긴 냄비가 놓여 있었다. 안 할머니는 "우리는 보일러가 없으니 그냥 난로에다가 물 올려놨다가 쓰곤 해"라며 "연탄이 효자"라고 치켜세웠다. 이날 함께 연탄을 전달받은 동네 주민 김복순 할머니(79)도 "없는 사람들이 연탄 때문에 산다"며 연탄의 소중함을 설명했다.
◇ 연탄은 안온한 생활의 마지막 보루

| 봉사자들이 다녀간 후 쌓여있는 연탄.2023.11.23/뉴스1 ©News1 장성희 기자 |
이 할머니가 시집온 1963년에도, 60년이 흐른 2023년에도 백사마을 주민들은 연탄을 사용한다. 난방 인프라가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버튼만 누르면 이용할 수 있는 도시가스는 산자락에 위치한 백사마을에선 그림의 떡이다. 도시가스의 손길은 백사마을이 위치한 경사로 밑 음식점과 카페까지다. 더 큰 문제는 가격이다. 보일러를 사용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동네 주민 김 할머니(80)는 한숨을 쉬며 "보일러 그 비싼 걸 우리가 어떻게 해요"라고 되물었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연탄의 월평균 사용량은 150장이다. 연탄 하나당 850원이니 월 12만7500원이다. 기름을 사용하면 금액이 껑충 뛴다. 보통 혹한기에는 기름을 1.5드럼 사용하는데 그 금액이 약 50만원이다. 연탄 사용의 4배에 달한다. 집주인이 보일러를 설치해 주지도 않는다. 김 할머니는 "고장 난 보일러가 있기는 하지만 집주인이 수리해 주지 않는다"며 "오히려 세입자인 나에게 고치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연탄은 생활의 마지막 보루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에 따르면 백사마을처럼 연탄이 필요한 전국의 연탄 사용 가구는 7만4000여 곳에 달한다. 사용 가구의 평균연령은 80세이며 한 달을 약 30만원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올해는 작년 대비 연탄 후원이 약 30% 감소했다"며 "올해 12월까지 연탄 100만장은 더 필요하다"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