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타임즈] [요즈음] 탄핵정국이 앗아간 연탄의 훈훈함
25. 03. 25. / 아시아타임즈 / 양혜랑 기자
"3월에도 연탄 봉사를 하나요?"
"네! 합니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이미 옷 보관함에 롱패딩을 집어넣었을 3월, 그러나 대한민국의 날씨는 마냥 포근하지만은 않다. 지난 17일에는 북극 한파가 몰아쳐 영하권 추위에 바들바들 떨어야 했고, 18일에는 서울에 폭설을 쏟아부은 동장군의 시위도 있었다.
이런 추위에도 보일러로 방을 따뜻하게 덥히지 못하는 곳이 있다. 고지대와 달동네, 비닐하우스촌 등 열악한 판잣집 등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 이곳들은 한 장에 900원인 연탄이 없으면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디기 어렵다.
연탄은행은 이런 어려운 이웃들을 빼놓지 않고 돌보고 있었고, 기자는 연이 닿아 지난 22일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에서 그들의 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날 현장에는 전국에서 모인 자원봉사자 등 100여 명이 연탄 3,500장을 14가구에 전달했다. 연탄봉사가 처음이었던 기자는 '무거울까' 지레 겁을 먹고 연탄 4장을 지게에 지고 나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생각보다 무겁지 않아서 4장을 6장으로, 나중에는 자신감이 붙어 8장까지 지게에 실어 날랐다. 솔직히 말하면 월요일 출근이 걱정돼 후반에는 다시 6장으로 줄였다.

이른 아침의 찬 공기가 현장에 가득했지만, 자원봉사자들의 열일에 연탄을 나르는 길은 금방 후끈해졌다.
자원봉사자들의 지게에 실린 연탄의 개수는 마치 '훈장의 수'와 같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특히 봉사단체를 통해 온 분들은 한명 한명이 모두 10여 년 정도 봉사를 이어온 '고인물'이었다. 이들은 연탄 15장을 지게에 쌓고, 양손에 연탄 한 개씩 총 17장의 연탄을 들고 휘리릭 날아다녔고, 고작(?) 10개의 연탄을 지게에 실은 고수들은 "난 언제쯤이면 12장의 연탄을 짊어져도 무겁지 않을까"라며 그들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봤다. 6개의 연탄을 실은 지게를 매고 낑낑대고 있던 기자에게는 그 10개의 연탄 지게도 눈이 부시게 멋있어 보였는데 말이다.

연탄 수 경쟁과 별개로 자원봉사자들은 서로 웃으며 격려했다. 가족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작은 지게를 지고 연탄을 옮겼고,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한 개의 연탄을 꼭 안고 또르르 달려가는 아이도 있었다.
제법 큰 티가 나는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연탄 나르기도 대결이었나보다. 서로 경쟁하듯 많은 연탄을 짊어지며 "힘들면 지금이라도 포기하던가"라며 귀여운 힘자랑을 했다.
도움을 받는 어르신들은 따뜻한 눈길로 자원봉사자들을 반겼다. 한 어르신은 자원봉사자로 온 아이에게 줄 게 없다며 과자 하나를 건넸고, '건강하세요'라며 인사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당신들도 건강하라'고 환한 덕담을 건기도 했다.
재개발 지역으로 철거명령이 붙어있는 플랜카드와 분담금 폭탄 등 현수막이 걸려있고, 담벼락이 무너져 내린 집, 철근이 튀어나온 벽 등 고전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분위기지만 연탄은행 직원들도, 봉사자들도 모두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마음이 따뜻하고 화기애애한 봉사 현장이었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아쉬움도 남았다.
연탄은행은 매년 300만 장을 기본 목표로, 전국적으로 400만 장 이상의 연탄을 나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전국 1만 5,000여 가구에 298만 장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 연말에 집중되는 후원이 예상보다 적었기 때문인데,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등으로 불안한 정국과 경기 침체로, 인심까지 싸늘하게 식어버린 탓이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연탄 후원은 89만 4,194장으로, 이는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해 무려 47%나 줄어든 양이다.
이날 봉사 현장에서 만난 허기복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 선포와 탄핵 문제로 인해 어려운 이웃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게 줄었다"라고 토로했다.
사회의 큰 혼란이 개인적인 나눔과 관심을 잊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어촌이나 섬마을 같은 외곽 지역에는 연탄을 보내지 못한 곳도 생겼다. 세상이 어수선하더라도 대한민국의 3월은 여전히 춥고, 도움이 필요로 하는 곳은 그만큼 많다. 탄핵의 혼란스러움이 앗아간 연탄의 훈훈함이 빨리 돌아와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연탄은행의 나눔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허 대표는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는 연탄 봉사는 오는 10월 11일에 다시 시작된다"라며, "그때를 기다리며 여름이 시작되는 6월부터는 선풍기, 생수, 인견바지 등을 전국의 취약계층에 전달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